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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정유산

유지화(정읍 농악-상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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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지화(정읍 농악-상쇠 )

  • 종목전북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 지정일1996년 03월 29일
  • 소재지정읍시 상사3길

상세정보

옛날부터 정읍지역(井邑地域)은 토착기층(土着基層) 민중사회(民衆社會)의, 세습무(世襲巫)들을 중심으로 무당굿(巫堂), 판소리, 민속무용(民俗舞踊) 및 기악(器樂) 등이 번창했고, 농악은 각 마을 단위의 집단적 민속예능(民俗藝能)으로 전승되면서도 토착 세습무 집단의 뛰어난 예능에 의해 예술적 수준의 향상을 기할 수 있었다.
정읍지역은 호남우도(湖南右道) 농악(農樂)의 발상지이며 좌도농악(左道農樂)과 함께 한국농악(韓國農樂)의 양대산맥(兩大山脈)을 형성하여 왔다.
정읍농악은 마을단위의 지신밟기 형태의 의식, 기원농악으로서 명백을 유지하여 오던 중, 갑오동학혁명(甲午東學革命)의 발발로 군중운집(群衆雲集)과 세과시(勢誇示) 또는 피로 회복(疲勞回復) 등의 필요로 집단(集團) 연예농악(演藝農樂) 또는 군악(軍樂) 등으로 발전 하였다.

갑오동학혁명에 깊이 관여했던 차경석 보천교(普天敎) 교주(敎主)는 농악을 보천교의 종교음악(宗敎音樂)으로 지정하여 낙성식 때 200여명의 농악 기능인(技能人)을 초청하여 대대적인 공연을 하는 등 농악을 육성 발전시켰으며, 그 때가 1920년에서 1930년이다.
이 때부터 호남우도농악의 기틀이 갖춰지게 되었고, 그 명인(名人)들이 각지에 흩어져 전수(傳授)함으로써 여러 지역에 퍼지게 되었다.
주로 왕래가 많았던 호남 서해안 평야지방인 정읍, 고창, 부안, 김제, 익산, 군산, 영광, 함평, 나주, 목포, 광주 등지에서 전파(傳播)되고, 그 기능(技能)을 익히게 되었다.
정읍우도농악은 쇠꾼이 부모상모를 쓰고 노는 「부포놀이」가 일품인데, 정읍농악의 특징 중 제일로 꼽는다.

밑놀이인 굿가락이 다양하고, 리듬이 다채로우며, 특히 다른 지방에는 없는 유일한 가락인 「오채질굿」은 2박과 3박이 뒤바뀌며 어우러져 변화를 주는 탁월한 가락이다.
농악 판굿 가락 중의 멋진 가락을 골라 조화롭게 구성, 창작한 「설장구놀이」는 발림과 어울려 차원높은 예술로 승화되였다.
유지화(兪枝和)는 열다섯 살 때, 호남우도 농악의 상쇠 박남식, 장구잽이 이명식으로부터 농악을 전수받았고, 열여섯 살 되던해에 상쇠 박성근, 장구잽이 김오채로부터 농악을 전수받았으며, 스무살 때에는 쇠잽이 김재옥으로부터 농악을 전수했다..

1953년 이후, 40년동안 농악단원 생활, 농악 단체로써 전북여성농악단, 호남여성농악단, 전주아리랑여성농악단, 유지화농악단, 충효국악예술단 등을 운영하였다.
지금은 정읍농악전수관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복색(服色)은 화려하고, 주로 고깔을 쓰는데, 발림과 대형의 조화로 한 과장을 차지할 정도의 멋을 부릴 수 있는 「고깔 소고놀이」는, 정읍농악에서 탄생시킨 걸작(傑作)이다.
각 과장마다 느린 장단으로 시작하여 한껏 여유를 부리며 서서히 빨라져 일진 광풍(一陣狂風)이 휘몰아치는 듯, 볶아대다가 맺는 기승전결을 갖춘 고도로 발달된 이 지방의 전통예술이다.

정읍농악은 전국농악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 3회를 비롯하여 각종 대회에서 대상을 수상 하는 등, 전국 최고의 기량(技倆)을 떨쳐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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